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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사

번개 치는데도 골프하는 간큰 골퍼와 골프장 장삿속이 원인

번개 치는데도 골프하는 간큰 나라
라운드 강행하는 골퍼와 골프장 장삿속이 원인

천둥ㆍ번개와 함께 많은 비가 예보된 1일.

경기도 용인의 A골프장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골퍼로 붐볐다. 며칠 전부터 잡아 놓은 부킹을 취소할 수도 없거니와 혹시나 날씨가 괜찮을까 하는 마음에 골프장을 찾았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 무사히(?) 라운드를 마쳤지만 만약 예보대로 낙뢰를 동반한 강우가 쏟아졌다면 아찔한 상황이 생길 뻔한 날이었다.

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골프계 관계자는 "골퍼들이 번개친 날 골프한 것을 무용담 삼아 떠들고 다닌다"며 "무리하게 라운드를 강행하는 골퍼도 문제지만 방관 내지 은근히 유도하는 골프장의 장삿속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 매년 낙뢰로 인명사고

= 지난달 29일 서울 북한산에서 낙뢰로 등산객들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연평균으로 치면 골프장에서 낙뢰사고가 훨씬 많다.

충청북도 D골프장은 매년 낙뢰사고가 발생하는 대표적인 `번개 골프장`으로 낙인 찍혀 있다. 2004년과 2005년 연속해서 낙뢰 사고가 발생해 인명 피해로 이어진 것.

특히 2002년 여름에는 낙뢰와는 관련이 없지만 이 모 교수가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이 골프장은 여름에는 피해야 한다`는 인식마저 골퍼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

이 정도는 약과다. 경기도 R골프장에서도 40대 남자가 골프장에서 휴대폰으로 통화하다가 낙뢰로 사망했고, 전라도 M골프장에서도 한 대학교수가 낙뢰에 숨진 적이 있다. 강원도 C골프장에서는 골프를 치던 모 장관 부인이 금목걸이에 벼락을 맞아 중화상을 입은 뒤 숨진 일도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골프장들은 기상 악화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필드를 개방한다.

이들 골프장은 대부분 기상청 일기예보에만 단순 의존한다. 여기에다 한술 더 떠 경기요원 육안을 통해 낙뢰 위치를 파악한 뒤 라운드 여부를 결정하는 `간 큰` 골프장도 있다.

또 라운드 도중 천둥과 번개가 쳐도 캐디나 골프장측 경고는 없이 순전히 골퍼들이 철수 여부를 결정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이에 대해 한 골프장 사장은 "비가 와도 라운드를 원하면 어쩔 수 없이 허용할 수밖에 없다"며 "피해를 줄이려고 사이렌을 울리는 등 대책을 마련해도 고객이 원하면 들어 줄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물론 낙뢰 사고에 자체적인 안전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는 골프장도 있다.

2000년 초반 낙뢰 사고를 당했던 전북 무주리조트CC는 2000만원을 들여 자체 낙뢰경보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1차 경보 때는 기상청 낙뢰 예보를 토대로 경계 경보를 발령하고, 2차 경보가 울리면 라운드와 함께 곤돌라 운영도 전면 중단한다.

이종관 한국골프장협회 팀장은 "천둥 번개 등 기상이 악화됐을 때는 골프장이 무조건 필드를 폐쇄하고 상황이 호전됐을 때 재개하는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 골프장보단 골퍼 책임 크다

= 낙뢰 사고 때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대부분 골프장은 `시설소유자 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해 있어 골프장에서 발생하는 웬만한 사고는 보험 처리가 되지만 골퍼 부주의로 인한 사고는 전적으로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게 법원 방침이다. 물론 낙뢰사는 보상 등을 둘러싼 문제가 복잡하다.

일단 판례만 놓고 보면 1차적인 책임은 골퍼가 져야 한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고문 변호사인 장달영 변호사는 "사고는 고의나 과실 책임을 따져야 하는데 낙뢰와 같은 자연재해는 일단 고의성 여부를 따질 수가 없다"며 "특히 자연재해는 예견 가능성을 두고 법원이 판단해야 하는 문제가 있지만 갑작스런 낙뢰에 대해서는 예견 가능성이 낮다고밖에 볼 수 없어 골프장 책임을 묻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골프장이 라운드하기 싫은 사람을 떠밀어 필드로 내몰지 않는 한 낙뢰사고 책임은 골퍼 본인이 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국토법률사무소 김조영 변호사도 "골퍼들도 낙뢰사고 위험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고 발생시 특수한 때를 제외하고는 골퍼 책임이 크다"고 설명했다.



[오태식 기자 / 신익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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