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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사

“등산로 낙뢰 대책 피뢰침이 능사 아니다”

“등산로 낙뢰 대책 피뢰침이 능사 아니다”

“등산로 낙뢰 대책 피뢰침이 능사 아니다”
경기도, 주요 산 28개소에 낙뢰방지시설 설치 예정
전문가들 ‘오히려 더 위험’ 지적도
산 정상에서 발생하는 낙뢰사고 방지를 위해 등산로에 피뢰침 등 낙뢰방지 시설물을 설치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경기도는 낙뢰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전국에서 처음으로 등산이용객이 많은 광교산, 수락산 등 주요 산 28개소에 피뢰침 등 낙뢰방지시설을 설치하기로 했다.
경기도는 또 내년 중으로 3억6200만원의 예산을 들여 낙뢰위험이 있는 곳에 피뢰침 49개소를 설치하고, 기존 등반 편의시설 중 감전위험이 있는 철제시설 설치구간 74개소를 절연성이 강한 친환경적인 목재와 타이어매트로 교체할 예정이라고 최근 밝혔다.
파주시의 경우 학령산과 심학산을 산림공원으로 조성하면서 낙뢰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이미 산 정상에 피뢰침을 설치했으며, 봉서산과 파평산에 추가로 피뢰침을 설치할 계획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산 정상과 같은 협소한 공간에 피뢰침을 설치하면, 낙뢰가 피뢰침으로 집중돼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는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낙뢰사고 현황 및 등산로 피뢰침 설치계획 = 매년 낙뢰 발생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올해는 예년보다 낙뢰 발생 빈도가 낮았다. 습도가 높아 낙뢰가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인데 하지만 앞으로 태풍이 올 경우 낙뢰 발생이 늘어날 수 있어 이에 대한 대비책이 중요하다. 지난해의 경우 북한산 용혈봉 정상에 떨어진 벼락에 등산객 4명이 목숨을 잃고 4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으며, 의정부 수락산에서도 비가 오고 있는 상황에서 등산객 4명이 하산하다가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를 당했다.
이에 지자체와 국립공원공단은 등산로 등에 낙뢰방지시설 설치의 필요성을 느끼고, 각 시군 별로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일부 언론들도 낙뢰방지시설 미비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며 지자체와 국립공원공단에 대책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경기도가 가장 적극적으로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는데, 올해만도 수원 광교산, 의정부 수락산 등 도내 19개 시·군 지역 28개산에 모두 7억2500만원을 들여 낙뢰방지시설을 추가로 설치하고 있다.

◆전문가들 “더 위험할 수 있다” 우려 =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산 정상과 같은 협소한 공간에 피뢰침을 설치하면, 낙뢰가 피뢰침으로 집중돼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는 더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산 정상에 피뢰침을 설치하는 것 자체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문가는 “피뢰침은 일종의 낙뢰 유도장치인데, 피뢰침을 설치하게 되면 낙뢰 발생 빈도가 증가하고, 암반으로 된 산 정상에서는 접지가 어려워 주변에 있는 사람의 보폭전압이 커져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재복 전기연구원 박사도 “실험을 통해 피뢰침으로 낙뢰가 가해졌을 때 피뢰침의 하부로부터 반경 수 미터 이내에 사람이 있게 되면, 인체에 위험한 전압이 발생해 감전될 수 있다”며 “피뢰침을 설치하려면 주변 지형과 보호대상 구조물의 재료 등을 고려해야 하는데 직격뢰가 가해질 우려가 있는 등산로에는 철제 계단이나 철재 로프가 있어 더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대책은 없나’ = 등산로 낙뢰사고 대책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기상상태에 따라 입산을 금지시키는 게 가장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나라의 경우 비가 오거나 날씨가 흐리면 낙뢰의 위험성을 인식해 산에 오르지 않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대국민 홍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국립공원공단 등에서 기상상태에 따라 등산객에게 낙뢰경보를 하거나 입산통제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를 위해선 낙뢰경보시스템을 철저하게 운영하는 게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낙뢰의 접근을 알 수 있는 경보시스템을 설치하고, 위험수준으로 접근하면 입산을 금지하거나 대피소와 방공호 등으로 안전하게 대피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유보혁 산업안전공단 안전위생연구센터 소장은 “낙뢰사고 방지를 위해선 정책적인 검토가 우선돼야 한다”며 “무조건적인 낙뢰설비 설치가 아니라 위험성 평가 등을 통해 피뢰침 설치가 가능한 곳은 설치하고, 공사비가 지나치게 많이 들거나 불필요한 곳은 낙뢰의 위험성 교육과 입산금지 등을 통해 적절한 대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형석 기자 (azar76@elec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