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연합뉴스) 현대.기아자동차의 제조 핵심 기술을 중국에 넘긴 국내 최대의 산업스파이 일당이 적발된 사건은 비단 자동차산업뿐 아니라 산업계 전반의 기밀 보안에 이미 '경고등'이 켜졌음을 의미한다. 수원지검에 따르면 기아차 전.현직 직원 등 9명이 작년 11월부터 차체조립 기술 등 57개 영업 비밀자료를 전직 직원들이 운영하는 컨설팅업체에 넘겼고 이들은 이중 일부 핵심 기술을 중국 업체에 이전해 주는 대가로 2억3천여만 원을 챙겼다. 검찰은 우리측 피해가 수 조 원대에 이르고 한국과 중국의 자동차 생산기술 격차가 2010년 기준 3년에서 1.5년으로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또 현대.기아차는 미처 넘기지 못한 기술 자료까지 모두 유출됐다면 2010년까지 3년 간 예상 손실액이 중국 시장에서만 4조7천억 원, 세계시장을 기준으로는 22조3천억 원에 각각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중국이 노리는 우리의 기술은 거의 전방위적이다. 전에는 우리가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한 휴대전화,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분야가 주종이었지만 이제는 자동차, 조선 등 제조업에도 무차별적으로 손길을 뻗치고 있다. 우리는 선진국들을 따라가려고 막대한 돈을 연구개발(R&D)에 퍼붓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애국심이고 직업정신이고 모두 팽개친 연구인력들이 돈 몇 푼에 현혹돼 귀중한 기술을 마구 유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에 따르면 2003년부터 이달 현재까지 적발된 기술 유출 사건은 모두 96건으로 업계는 이들 기술이 유출됐을 경우의 피해액을 95조9천억 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기술 유출은 2003년까지만 해도 6건에 그쳤으나 2004년 26건, 2005년 29건, 2006년 31건 등으로 근년 들어 부쩍 늘어났다.
한국이 일본의 선진 기술과 중국의 값싼 가격 사이에 끼어 있다는 `샌드위치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이처럼 산업기밀이 줄줄 새어나가서는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다가는 그나마 간발의 차이로 중국에 앞서 있는 기술 우위를 머잖아 잃어 버리기 십상이다. 당장 이번 사건만으로도 한국과 중국의 자동차 기술 격차가 1.5년이나 축소된다지 않는가. 그런데도 이번에 검거된 산업스파이들은 이메일을 통해 손쉽게 내부 영업 비밀자료를 빼내 조직적으로 중국에 넘겨준 것으로 드러나는 등 국내 업체들이 산업스파이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음이 다시 한 번 입증됐다.
국가경쟁력 추락과 직결되고 피해액도 천문학적 규모에 이르는 첨단기술의 해외 유출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된다. 국정원 등 관계 당국과 업계가 치밀한 공조를 이뤄 강력하고도 체계적인 기술 유출 차단책을 마련해야 한다. 민간 기업을 대상으로 한 R&D 보상제도를 확대해 금전적 유혹을 떨칠 수 있도록 하고 기술 유출 신고자에 대한 포상금도 늘려야 한다. 기술 유출에 대한 처벌 강화도 일책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달부터 발효되는 `산업기술유출방지법'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기대된다. 기술 유출범을 최고 형량으로 처벌하고 국가 핵심 기술을 수출할 때에는 승인을 받도록 하는 등 나름대로 대응책을 마련한 만큼 엄정한 집행으로 기술 유출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 그렇지만 산업스파이의 85%가 전.현직 직원임을 감안할 때 연구인력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고 퇴직 후 관리를 강화하는 등 업체들 스스로 자구책을 강구하는 게 최선임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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