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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아열대화 갈수록 빨라질 것”

[월요인터뷰] "한반도 아열대화 갈수록 빨라질 것” [중앙일보]
기상청 기후팀장 권원태 박사
만난 사람 = 강찬수 환경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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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한 하늘,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과 함께 가을이 돌아왔다. 올여름은 참으로 변화무쌍한 날씨였다. 장마가 끝났는가 했는데 8월 들어 장마철보다 더 자주 비가 내렸다. 휴가를 망친 사람이 많았다.

게릴라성 호우와 낙뢰 사고로 적지 않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어찌된 일인지 비가 오는 동안에도 열대야가 이어졌다. 게다가 8월은 하순이 초순보다 더 무더웠다. 전국에는 연일 폭염특보가 내려졌다. 9월로 접어들면서 날씨의 심술이 잠잠해지길 기대했지만 남부 지방은 때 아닌 가을 장마까지 겪었다. 돌이켜 보면 정말 이상한 날씨였다.

국민은 두 가지가 궁금하다. 우선 내년 혹은 그 이후에도 이런 변덕스러운 날씨가 계속될지다. 이런 현상은 정말 지구 온난화 때문인가. 둘째로는 기상청 예보에 대한 것이다. “좀 제대로 맞힐 수 없느냐”는 불만이 적지 않다.

권원태(52) 박사는 기상청 국립기상연구소의 기후연구팀장이다. 국내 기후변화 연구를 주도하는 인물이다. 그를 만나 날씨 이야기를 들어봤다.

 
-일반인들은 올여름 날씨로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걸 기상 이변 탓이라고 봐야 하는가.

“일반인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측정 수치만으로 본다면 올여름의 더위는 평년 수준이라고 봐야 한다. 8월엔 기온이 높았지만, 그래도 더운 여름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아주 무더웠을 때도 서울의 기온이 35도를 넘은 적이 없었다.”

-이해가 잘 안 된다. 일반인들이 체감하는 것과 측정값으로 나타나는 날씨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뭔가.

“7월 말과 8월 초는 휴가철이어서 날씨가 맑고 더울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비가 계속 왔다. 심리적 기대치가 컸기 때문에 당혹감도 컸을 것이다. 장마가 끝나고 8월에 비가 온 게 올해만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최근 10년 동안 8월 초에 비가 많이 오는 경향이 있다. 이때 내리는 비는 장마와는 달리 호우 형태를 띤다. 게다가 지난해에는 7월에 비가 많이 오고 8월에는 안 왔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올해 많이 달라진 것처럼 느낄 수밖에 없다.”

-여름 전체를 ‘우기(雨期)’로 봐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럴 정도로 기후가 급변하고 있는 것인가.

“일반인은 비가 계속 오면 장마와 연관을 지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상학자들은 대규모 공기 흐름이 어떻게 달라지느냐를 보고 장마를 별도로 구분한다. 그런데 기상학자들이 생각하는 장마나 우기 개념도 조금씩 차이가 나고, 일반 국민이 느끼는 것과도 다르다. 따라서 장마 대신 ‘우기’ 개념을 도입하는 일은 조금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런 것들이 한반도가 아열대 기후로 바뀌고 있다는 증거라고 볼 수는 없나.

“그 지적은 맞는 것 같다. 학자마다 기준이 조금씩 다르지만 어떤 기준을 적용해 봐도 아열대 기후로 볼 수 있는 선이 차츰 북상하고 있는 게 확실하다. 앞으로는 더 빠르게 북상할 가능성이 있다. 월 평균 기온이 10도 이상인 기간이 8개월을 넘을 때를 아열대 기후로 정의한다. 현재 제주도는 물론 남해안 일부도 아열대 기후라고 얘기할 수 있다.”

-국민은 기상청의 예보가 틀릴 때가 많다고 느낀다. 실망도 크다. 예보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없나.

“과학적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다. 10년 전에 비해 예보 정확도가 훨씬 높아졌다는 것은 국민도 인정할 것이다. 특히 여름철의 경우 예보에 어려움이 있다. 비가 오는 원인이 발달해서 소멸할 때까지 일주일이 걸린다면 비교적 정확하게 예보할 수 있다. 하지만 여름철 비(국지성 호우)는 짧은 시간에 발달해 소멸하기 때문에 비가 내리는 지역이나 시간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예보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은 하고 있는 것인가.

“물론이다. 수치 예보 모델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짧은 시간에 발달하고 소멸하는 경우에 맞춰 일기예보도 여러 종류가 나오고 있고, 거기에 맞춰 레이더 등을 이용해 단기적인 정보도 나온다. 정보를 전달하는 데 있어 시간도 중요하다. 모바일 통신 기술이나 인터넷을 활용해 전달방법을 개선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앞으로의 기후변화는 어떤 양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는가.

“한국의 평균기온 변화가 전 세계의 변동폭보다 크다. 지난 100년 동안 전 세계 기온은 0.7도 상승했지만 한반도는 1.5도가 올랐다. 특히 앞으로 20~30년은 지금까지 올라갔던 속도보다 훨씬 더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과거에 비해 두 배 이상, 또는 세 배 이상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온난화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날 것으로 보는가.

“기온이 올라가면 호우가 더 자주 발생하고 해수면은 상승한다. 바닷물 온도도 올라간다. 기온이 2~3도 상승하면 생물종의 20~30%가 멸종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바다에서는 잡히는 어종이 변하고 해파리도 많이 나타날 것이다. 강원도 양구에서도 사과를 키우듯이 우리가 먹는 과일의 경우 재배지역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기후변화에 적응하려는 노력도 필요하지 않겠나.

“폭염이 늘어날 것이고 노약자들에 대해 준비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질병이 나타날 수도 있다. 온난화가 지속되면 태풍이 강해진다는 이론에 전문가들도 공감하고 있다. 한반도 주변 해수 온도가 올라가면 태풍의 세력이 약화되지 않기 때문에 피해는 매우 커질 것이다. 1972년 태풍 베티로 인한 피해는 국내총생산(GDP)의 0.6%였다. 2002년 루사 때에는 0.9% 수준이었다. 그 사이 GDP 전체 액수도 크게 늘어났는데, 비율까지도 증가했으니 피해가 굉장히 늘어난 셈이다. 이 때문에 대응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가령 해수면 상승을 감안해 방파제를 높이거나, 위험 예상 지역에 대한 개발을 제한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국제사회의 논의도 빨라지는 것 같다.

“사람이 배출한 온실가스가 온난화를 일으켰다는 유엔 정부간기후변화협의체(IPCC) 보고서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으로 봤을 때 서두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온실가스 감축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제는 그런 부분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국민이 동의를 해줘야 정책도 그런 방향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권원태 박사=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석사학위, 텍사스 A&M대에서 기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기상청 국립기상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고, 2000년부터는 기후연구팀장을 맡고 있다. 기후연구팀은 기후모델과 시나리오 개발을 통해 지구와 한반도의 기후변화를 예측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환경부·기상청 등으로 이뤄진 한국기후변화협의체(KPCC) 산하의 기후변화연구회 회장도 겸하고 있다.

글=강찬수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비 아니면 폭염 … 올여름 변덕 날씨
장마 뒤 16일간 비
열대야도 평년 2배


올여름 전체(6~8월)를 놓고 보면 날씨 관련 기록들이 평년 기록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그에 못 미쳤다는 게 기상청의 분석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올여름 날씨를 ‘변덕이 죽 끓듯 했던 날씨’로 기억한다. 실제로 그런 날씨 때문에 곤란을 겪었던 사람도 적지 않다. 올여름 날씨의 특징적인 모습을 정리했다.

◆장마 후에 더 잦은 비=7월 하순 기상청이 장마가 끝났다고 발표했으나 8월 들어 비가 지속적으로 내렸다. 서울은 8월 1~16일에 하루도 빼놓지 않고 비가 내려 1961년 이후 가장 오래 비가 내린 기간으로 기록됐다. 하지만 여름 전체 강수량은 많지 않았다. 전국 60개 기상 관측 지점의 평균 강수량이 676.3㎜로 오히려 평년보다 23.6㎜ 적었다. 올여름엔 비 양은 많지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내리는 바람에 ‘비가 많았던 여름’이란 인상을 사람들에게 남긴 것이다.

◆비 아니면 폭염=올해 시범 도입된 폭염특보가 남부지역에 집중적으로 발령됐다. 남부지방에서는 발령 일수가 15일이 넘어 비가 내리는 날만 제외하고는 내내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여름 전체 기온은 평년 수준을 약간 웃돌았다. 전국 60개 지점의 올여름 평균기온은 23.8도로 평년보다 0.3도 높았고, 최고기온 평균값은 28.3도로 평년보다 0.1도 높았다. 평년과 올여름 기온 차가 크지 않았던 것은 6월과 8월은 평년에 비해 기온이 높았으나 7월 장마철 기온이 평년보다 낮았기 때문이다.

◆열대야는 늘어나=흐린 날씨에도 열대야는 자주 나타났다. 공기 중 습기와 구름이 이불 구실을 해 밤에도 열기가 식지 않았기 때문이다. 8월 말까지 서울에서는 열대야가 12일 발생해 평년 6.1일의 두 배 수준을 기록했다.

◆8월 하순이 더 더워=잦은 비로 인해 늦더위가 심했다. 8월 초순 서울 지역의 낮 최고기온은 평균 28.9도였으나, 중순에는 30.6도였고, 하순인 21~28일에는 평균 31.6도였다. 29일 이후에는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져 이상한 여름 날씨에 하나를 더했다.

강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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