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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선]‘1 대 29 대 300’의 사고 법칙

[대구에선]‘1 대 29 대 300’의 사고 법칙
입력: 2008년 03월 20일 17:54:47
대구시민들은 지하철이란 말만 들어도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다. 대구에서 최근 잇따라 발생한 크고 작은 지하철사고 소식은 5년 전 지하철 방화참사와 겹쳐 시민들의 불안심리를 한층 자극한다. 대구지하철 사고행진은 언제쯤 마침표를 찍을까. 그러나 대구시와 지하철공사의 행태를 살펴보면 아직도 불안감을 씻을 수 없다.

<박용진 /계명대교수·교통공학과>
세계 최고의 안전시설을 들먹이면서 2005년 개통한 대구지하철 2호선은 최근 10여일 사이에 다섯차례나 사고가 발생했다. 정전과 화재 등으로 달리던 전동차가 갑자기 멈추어서는 바람에 터널에 갇힌 시민들이 공포에 떨기도 했다. 지난 3일 오전에도 범어역 지하 2층 역사에서 화재경보기 오작동으로 전동차 운행이 중단되는 등 하루가 멀다하고 크고 작은 사고가 이어졌다. 그때마다 시민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대구는 2003년 2월 중앙로역 전동차 방화로 192명이 숨지고 148명이 부상을 당하는 참변을 겪었다. 그럼에도 아직 지하철 사고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구 지하철=사고철’이라는 오명은 언제쯤 떨칠 수 있을까. 오죽했으면 대구의 지하가 무섭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이 같은 사고에 대한 대구시와 대구지하철공사의 해명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사소한 지하철 사고는 전국 에서 수시로 발생하는데 왜 그리 호들갑을 떠느냐”는 반응이다. 퇴근길에 1시간40분 동안 운행이 중단되고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질 않는데도 대수롭지 않단 말인가. 시민들의 불편과 불안은 안중에도 없는 몰염치한 행위다.

잇단 사고에 대해 시민들의 여론은 빗발치고 있다. 지하철공사의 관리와 운영시스템에 대한 대폭적인 수술을 요구하고 나섰다. 결국 대구지하철공사는 전 구간에 걸쳐 안전진단에 들어갔고 “전문가들이 안전진단을 한 결과, ‘이상없음’이라는 결론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변전소 화재는 인근 변전소까지 단전되고 재급전까지 어느 정도 복구시간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럼, 지하철 변전소 화재만 나면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는 불편을 감내해야 하는지, 비상급전시스템 가동은 무용지물인지 등에 대해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구지하철공사는 안전점검에서 별 문제가 없다고 해서 책임에서 비켜나갈 수 없다. 기계와 시스템의 문제가 있으면 철저한 관리와 점검으로 이를 메워야 한다.

대구지하철공사를 관리 감독하는 대구시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대구시는 잇단 사고에도 지하철공사 임직원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지 않았다. 대구시장이 지하철공사를 방문, 안전을 강조하면서 직원을 질타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대구시와 지하철공사가 아직도 안전불감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 같은 안이한 조치로는 시민들의 불안감을 걷어낼 수 없다. 대구시는 시민들의 정서를 헤아리고 안전도시를 위해 획기적인 조치를 내려야 한다. 실패에도 법칙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흔히 ‘1:29:300’이라는 하인리히의 실증적 법칙은 이번 사고의 교훈으로 되새겨볼 만한다. 한번의 큰 사고가 발생하면 그 전에 이미 29번의 경미한 사고가 있었고 그 주변에는 300번 이상의 징후가 감지된다고 한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조금만 긴장하면 사전에 감지할 수 있다는 증거다. 대구지하철은 언제쯤 사고철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시민 안전을 지켜주는 못하는 상황에서 경쟁력 있는 도시 건설은 헛구호에 불과하다.

〈 박용진 /계명대교수·교통공학과 〉